할리팩스 노바스코샤에서 타이타닉 희생자들을 기억합니다
Posted on April 23, 2012 • 2 minutes • 272 words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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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00년 전 타이타닉이 빙산에 충돌하여 1,500명을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. 많은 이들은 그 사건을 낭만적인 영화를 통해서만 기억하는 것으로 보이지만, 희생자들의 가족과 친구들, 생존자들, 구조자들은 이 사건을 계속 기리고, 100주년이 되는 지금에는 많은 역사 애호가들이 나홀로팩스의 작은 묘지에 모여 있었습니다. 나홀로팩스가 그 비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사람들은 종종 잊어버립니다. 생존자들이 뉴욕으로 옮겨갈 때, 매케이-베넷 선반의 선원들이 얼어붙은 대서양 바다에서 죽은 사람들을 가져다가 캐나다 노바스코샤주의 항구 도시 나홀로팩스에 안장했습니다.
페어뷰 묘지
노바스코샤에서 이번 주 동안 수많은 타이타닉 행사가 있었는데, 전부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페어뷰 묘지에 있는 타이타닉 기념비를 꼭 방문하고 싶었습니다. 결국 전 자전거를 타고 그 곳에 도착해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조용히 무덤을 걸으면서 지나 다니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. 이들이 무덤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되었습니다. 아마 이 사고로 사망한 타이타닉 희생자들이 누군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, 나 또한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말입니다. 내내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속 속삭이고 있는 잭 도슨에 대해 울게 될 것을 염려했습니다. 하지만 현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.
알 수 없는 어린이
젊은이와 노인이 돌들을 바라보며 글을 읽어 나갔습니다. 제가 2011년까지만 알려진 19개월 영아 싯니드 구드윈의 묘비 앞에 꽃을 꽃는 젊은 여자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. 그는 영국어이며, 타이타닉 침몰로 온 가족이 모두 사망한 아이였습니다. 나홀로팩스북 묘지를 방문하는 젊은이들이 아직 삶을 살아가지 못한 어린아이를 기리는 따뜻한 마음 때문인지, 또는 알 수 없는 아이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연로한 커플을 지켜보았습니다.
용감한 타이타닉 선원들
나는 무덤을 걸어가며 이름, 숫자, 날짜를 읽었습니다. 이 비극에서 목숨을 잃은 많은 남성들은 내 나이대였습니다. 20대 초반이었습니다. 이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나도 이렇게 용감했을까?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. 나가기로 마음먹고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을 돌을 찾았습니다. 그 돌은 에버렛 에드워드 엘리엇의 묘비였습니다. 그 묘비에는 시적으로 “더 약한 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각 사람이 자리에 서 있었고, 온 세상에게 어떻게 잉글랜드 사람이 죽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“라고 적혀 있었습니다.